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셜 플랜 (문단 편집) == 동아시아와 서부 태평양 문제 == 사실 냉전이 끝난 지금 와서 보면 마셜 플랜은 당대 서유럽의 경제를 일으켜세워 공산권의 침입을 막고 냉전 승리를 가져다 준 결정적 장면 중 하나로 거론되지만 비판 역시 없진 않다. 특히 유효한 비판은 주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부 태평양 지역에 대한 상대적 방치와 무관심에서 이뤄진다. 쉽게 말해 당대 미국이 유럽만큼 동아시아에는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미소가 동아시아에 집중한건 70년대부터다.] 그리고 미국이 이렇게 유럽에 정신이 팔려 국가의 자원을 사실상 총동원하는 사이 미국의 관심 밖에 있던 아시아에선 [[국공내전]]으로 인해 국민당의 패배와 [[국부천대]], 그리고 [[6.25 전쟁]], [[인도차이나 전쟁]] 등이 일어났다. 마셜 플랜은 당시 국무장관 딘 애치슨의 머리에서 나왔는데 둘 다 유럽에 비해 아시아에는 확실히 무관심했다. 덕분에 마셜과 애치슨은 중화민국이 타이완으로 쫓겨나고 대륙이 공산화되는 것을 방치하고 한국전쟁이 일어난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미국의 보수파들에게 비판을 받았으며 여기에 더해 애치슨의 경우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하여 [[김일성]]과 [[마오쩌둥]]에게 헛바람을 넣어 6.25를 유발한 것으로 지금까지 일각에선 비판받고 있다. 미국의 상대적 무관심과 방조가 중국 사태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은 사실이었고 중국의 사회주의화에서 시작된 아시아에서의 도미노는 결국 [[6.25 전쟁]]과 [[진먼 포격전]], [[인도차이나 전쟁]]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평가받는다. 실제로 예상치 못한 중국 공산당의 승리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설이라는 --로또--성과를 거둔 이후 소련은 동아시아 지역에 급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김일성과 호치민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자들을 후원하여 한반도 전역[* 한반도의 경우 처음에는 스탈린이 김일성을 후원하는 것을 주저하였으나 김일성의 자신만만한 호언장담과 끈질긴 회유, 거기에 [[마오쩌둥]]의 설득과 권고까지 겹쳐 북한의 전쟁 준비를 지원하기로 하였다.]과 인도차이나 지역을 사회주의 세계로 끌어들일 계획을 세웠다.[* 궁극적으로는 일본 내 반정부 세력들과 연대하여 일본까지 소련 영향력 아래 두려 했다는 의혹도 존재한다. 다만 미국 입장에서 보면 동아시아와 서부 태평양의 최후 보루 쯤 되는 일본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행사 시도는 미국과의 직접 충돌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한국과 인도차이나의 적화 또한 실패하거나 크게 지연되었기 때문에 실제론 소련이 일본에까지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즉, 미국이 마셜 플랜으로 소련을 자극하였으면서도 또다른 전장이 될 가능성이 큰 동아시아와 서부 태평양에 대해서는 비판자 입장에서 보자면 지나치게 무관심했던 것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서부 태평양 곳곳에서의 충돌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 2차대전 직후의 동아시아는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발전된 지역이 아니었고 중동처럼 석유같은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졌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사실 현재 21세기에도 서유럽이나 동아시아보다 낙후된 [[동유럽]]이나 [[중남미]] 같은 곳은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을어 [[우크라이나]] 같은 경우도 2022년에 러시아가 전면적으로 침공하기 전까지는 크게 지원을 받지 못했고 나토에도 가입하지 못했으며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는 버리고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자는 주장까지도 심심찮게 나오곤 했다.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뒤떨어지는 우크라이나는 경제적으로 발전된 서유럽이나 동아시아, 석유가 있는 중동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당시 미국은 국민당이 버티는 중국만 있으면 소련이 크게 위협을 줄 수 없다고 보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 국민당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버릴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실제로 소련은 당시까지만 해도 모스크바가 위치한 서부 핵심 지역과 동유럽의 영향력 확대를 더 중시했지 소련 입장에서 보자면 낙후된 깡통 시골 도시뿐인 극동 소련 지역은 그렇게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연방은 중국의 블라디보스토크로의 영향력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서 이쪽에도 투자하려고 하고 있다. 사실 미국의 책임을 따지자면 마셜 플랜보다는 [[중일전쟁]]부터 이어진 극동에 무지한 미국의 대중국 외교의 책임이 더 클 것이다.[* 물론 위에도 나와 있듯이 당시 중국 대륙의 합법 정부는 중화민국 국민정부였으며 이 중화민국은 미국과 한 편이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국공내전이 터지면서 중화민국이 내부 문제로 인해서 패배하고 국부천대로 타이완섬으로 옮기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러한 일이 생길 줄은 국민당과 미국은 물론이고 적대 세력인 중국공산당도 생각하지 못했다. 동아시아 공산 세력의 확장은 동아시아에 관심을 덜 준 미국의 실책도 있지만 내부 부정부패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 전쟁을 일으킨 중화민국의 잘못도 있다.] 게다가 아시아에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후 한국, 일본, 대만에 충분한 지원을 해서 저들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는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